비정규직 후배에게 16번을 권하며
모레면 아니 날짜로 내일이면 선거다. 지나가는 말로 선거 꼭 하라고 얘기는 했지만 어디를 찍으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냥 새누리를 찍든 어디를 찍든 선거들은 꼭 하라는 공자님 말씀을 읊었을 뿐이다. 그게 국민의 의무고 권리라고. 그리고 정치 같은 거에 관심 없다고 자랑스레 얘기하는 이들은 정치 또한 눈여겨보지도 않는 조약돌로 발길에 채이는 존재가 될 뿐이라고.
선거를 왜 해야 하느냐의 고리타분한 설교는 이것으로 쫑하자. 김병만이 민망한 옷 입고 투표하자 외치고 온갖 유명인사들이 투표율 얼마면 어떤 퍼포먼스를 하시겠다는 약속들을 내거는 마당에 내 얘기 보탤 것이 있겠냐. 뭐 나도 하나 걸까. 투표율 70퍼센트가 넘으면 하루를 굶고 80퍼센트가 넘으면 1주일을 굶지.
그럼 투표해야 할 이유는 차치하고 누구를 찍을지에 대해 얘기해 보자. 안철수 원장도 ‘인물’을 보고 찍으라고 하던데 나는 사실 ‘인물’ 보고 찍으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몇 년을 같이 뒹군 사람들 속도 때로는 잘 모르는데 일면식도 없고 아는 거라고는 선거 공보장에 적힌 몇 글자 이력 밖에 없는 이들의 인물됨을 어떻게 파악하겠냐. 척 하면 사람 꿰뚫는 고수가 아니라면 말이지.
그럼 뭘 기준으로 할까? 누가 더 민주주의에 힘쓸 것인가? 뭐 거창하긴 한데 그건 다른 사람더러 하라고 하고. 누가 더 우리 지역구를 바꿔 놓을까? 그건 지방선거에서 찍도록 하고. 누가 더 인물이 좋은가? 몰라 고현정이나 나오면 찍어 줄까. 난 그냥 딱 하나의 기준만 권하고 싶다. 너한테 이익이 되는가 안되는가다.
요즘 트윗을 보면 강남 사람들이여 일어나라는 둥 깨어나라는 둥 호소가 많던데 나는 사실 강남 사람들이 존경스러워. 자신들이 한국 사회에서 점유하는 계급적 위치를 철저하게 자각하고 그 이익에 복무하는 투표를 하고 있잖아. 사실 그게 선거거든. 생각해 봐. 대한민국이야 건국할 때부터 1인 1표, 남녀불문 재산불문 평등 선거가 도입됐지만 서양에선 달랐어. 자고로 선거란 한국의 강남 3구 정도에 집 두어 채 가진 사람 정도에게만 해당사항이 있는 것이었다고. 그 선거권을 얻자고 턱없이 많은 이들이 피를 뿌리고 눈물을 흘렸지. 그런데 왜 그랬을까? 민주주의의 숭고함 때문에? 아냐. 턱도 없는 소리. 그건 자기 이익들을 관철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염원의 합이 민주주의였고, 또 민주주의가 보다 많은 이들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이야.
누군가에 표를 던지는 건 결국 저 사람이 나한테 이익이 될 것인가, 내 편인가를 따지는 거라고. 문제는 그 이익 여부를 잘 따지는 거지. 셋방 사는 처지에 “뉴타운 개발!”같은 허황한 공약에 나한테도 떡고물 떨어지겠지 하면서 표 던지면 바로 바보인 거고. 제 자식이 특목고에 갈 경쟁력이 있고 없고를 타진하기 전에 “외국어고 유치!”에 헤벌레 침 흘리는 건 가련한 미련퉁이인 거고. 이런 거 저런 거 안 따지고 ‘될 사람을 밀자’는 건 가히 구제가 어려운 거고. 그런 의미에서 강남 사람들은 존경스러운 거야. 저 사람이 내 지갑에 눈독을 들이느냐, 아니면 채워주느냐가 기준이잖아. 얼마나 심플해? 너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야. 물론 나도 그렇게 해야지. 비정규직 노동자인 너는 너의 이익을 위해, 정규직이었다가 지금은 좀 애매하게 된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
장터에서 줄다리기 시합이 벌어진다고 해 보자. 아무리 판이 흥겹고 시끄러워도 따져야 될 것은 어느 줄이 우리 마을 사람인가일 거야. 즉 얼른 보기에 이길 것 같은 줄에 붙어 영차 영차 힘 쓰면 이겼다 환호야 하겠지만 막걸리 한 잔 못 얻어먹고 남 좋은 일 시키게 되지 않겠니. 나한테 이익이 되는 줄을 찾아야 해. 그 줄이 미약하고 어차피 못이길 거 같더라도 동네 사람들 모으고 불러서 그 줄을 포기하지 않아야 결국은 너 스스로에게 유익하다는 뜻이야.
그럼 어느 줄을 잡는 게 좋을까?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이른바 88만원 세대로서 우리 사회의 끈적끈적하고 냄새나는 늪 속을 허우적거리고 있는 너는. 나는 네게 감히 얘기하지만 정당투표만큼은 길쭉한 투표용지의 하단에 위치하고 있을 16번을 염두에 두는 게 좋을 거다. 언급했지만 새누리당은 강남 사람들이 그들의 계급적 이익에 따라 찍는 정당이고 통합민주당은 너희들이 경험했던 비정규직을 실질적으로 확산시켰던 전력이 있는 정당이야.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도 솔깃하긴 한데, 사실 너한테 이익이 되는 정당이라고 확언해 주긴 어렵다.
한지붕 세 가족이 그럴 수 없이 다 다르고, 좀 심하게 말하면 물과 기름과 미숫가루가 섞여 있는 정당이거든. ‘민주주의 회복’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너같은 사람들을 묶어 세우거나 너희들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기엔 좀 복잡한 정당이야. 유시민 대표로 대변되는 그쪽 세력은 차치하자. 사실 민주당하고 정견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쪽과 안맞아서 딴 살림을 꾸렸을 뿐이라고 봐. 그리고 이정희 대표가 똑똑해 보인다고 했지만 그녀를 내세우는 세력의 중추는 노동자들의 명절이라 할 노동절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북한 노동자들과의 축구 시합에 더 열성을 쏟은 사람들이었거든. 그걸 탓하는 게 아니라 행동의 준거가 다르다는 거다.
물론 내 말이 지나친 단순화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소한 너같은 비정규직들, 밥 먹을 곳이 없어서 변기 위에 앉아 깍두기 씹는 소리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밥 먹는 미화노동자 아주머니들, 다른 것도 아니고 노동자인 걸 인정해 달라는 요구 하나를 따내기 위해 시청 앞에서 몇 년을 버티고 있는 학습지 교사들의 목소리가 그나마 담길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다면, 나는 16번을 권할 수 밖에 없다. 아까 말한 줄다리기 줄로서 말이지. 비정규직 청소부 아주머니를 비례대표 1번으로 정한 유일한 정당.
그런데 이 줄은 미약하고 가녀려. 다른 정당들은 국회의원 몇 석일까를 계산하고 있지만 이 정당은 3퍼센트 투표율을 얻지 못하면 사라질 운명의 정당이야. 그래서 의미없다고, 소용도 없다고, 줄을 잡아야 할 사람들이 잡지 않는다면 그 줄은 장바닥에 굴러 뭇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겠지. 정작 그 줄을 잡았어야 할 사람들은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저 새빨간 거짓말부터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좀 애매한 목표에 이르는 말 말 말의 홍수 속에서 어느 줄을 잡고 힘을 써야 하나 헛갈리다가 지쳐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에이 그놈이 그놈이라고 한탄하며 돌아앉을지도 모르고 정치란 건 다 그런 거라고 침을 뱉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강남 사람들은 웃으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할 정당을 귀신같이 구분해서 어김없이 찍고 있을 것이고 말이야. 강남 사람들도 그놈이 그놈이란 걸 모르지 않아. 정치란 그런 거라고 다 침 뱉는단다. 하지만 그들은 지혜롭게 사고하고 뚝심있게 투표해. 지난번 무상급식 투표 때 타워팰리스 투표율 봤지?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상급식에 민감했을까? 그건 무상급식 세원이 자기들에게 부과될 것이라는 본능적인 방어의식 때문이거든.
너 뿐 아니라 네 친구들, 그리고 가진 건 몸뚱아리와 열정 뿐이지만 평생 벌어 봐야 서울 시내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할 것 같은 이들, 묵묵히 일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는대로 받고 항상 복종하며 휴가 하루 내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고 언제 문자로 “그만 나와라.”는 통고를 받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든 사람들도 그런 지혜를 발휘해 봐야 하지 않을까. 도대체 누가 나한테 이익이 될까. 그 간단하고도 명료한 기준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첫발이 디딜 발판으로 나는 16번 진보신당이 이번 선거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 그러기 위해서는 2퍼센트가 필요하고, 비정규직 환경미화 노동자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청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정활동을 위해 들어가기 위해서는 3퍼센트가 필요하다. 아직 정당투표를 결정하지 않았다면 네 표를 그 작은 성취에 가담하라고 권유한다면 무례가 될까. 하지만 그 무례를 범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