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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산하의 썸데이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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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한 후에 분노하라 - 관악 종북좌파 대자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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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음식점에서 종업원과 임산부 손님 간에 시비가 벌어져 종업원이 임산부의 배를 차는 등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했고, 사장은 보고만 있었다는 호소가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었다. 트위터는 살인미수로 그 종업원을 다스리라는 분노 어린 RT의 쓰나미로 뒤덮였고, 체인점 본점 측은 백배 사죄하며 해당 분점을 폐쇄하겠노라고 바짝 엎드렸다. 그런데 피해자라는 임산부가 올린 글을 읽다가 문득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다가 종업원이 “나 너보다 돈 많거든!”이라고 언성을 높이며 시비를 걸었다는 부분이었다.


 대개 이런 멘트는 대개 “사람을 뭘로 보고?”류의 후렴구다. 즉 뭔가 인격적인 모욕 또는 모멸적인 언행이 있은 뒤에 등장하는 대사인 것이다. 그래서 임산부를 폭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살인미수적 행위라는 것에는 아무 이의가 없으나, 내막은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별 뜻 없이 트윗을 끄적였는데 그 순간 나는 폭력 옹호자에 임산부의 고통을 모르는 사이코패스에, 심지어 문제의 음식점 종업원으로 취직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격렬한 멘션이 신기전처럼 날아들었던 것이다. 임산부 폭행의 죄질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 파악 후에 돌을 주우러 다녀도 늦지 않다는 얘기라고 변명을 해도 도대체 무엇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냐며 통분하여 가슴을 치는 사람 앞에서는 사실 할 말이 없었다. 뭐라고 얘길 하겠는가.



아마도 CCTV가 없었다면 그 음식점은 꼼짝없이 문을 닫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CCTV에는 상당 부분의 정황이 잡혀 있었다. 종업원이 임산부를 뒤에서 밀어 넘어뜨린 것은 맞지만 (임산부임을 알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한다) 쌍방이 폭행을 교환했다. 사장도 ‘멀거니 보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뜯어말리려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화면 앞에서 임산부의 증언은 150도 정도 뒤집어졌다. (폭행의 시작은 종업원이 맞으니) 시비는 있었으나 임산부의 배를 걷어차는 야만적인 폭행은 없었다. 사람들이 가장 격하게 반응하고 열띠게 흥분했던 바로 그 부분이 팩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이라는 ‘살’은 팩트 확인이라는 ‘뼈’를 구한 다음에야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순서가 뒤바뀌면 연체동물이 되어 흐느적거리거나 ‘빛나는 해골에다 갈비뼈가 열 두 개’가 살 위를 덮은 괴물의 형상이 창조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멋모르고 쏘아붙인 섣부른 화살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어제 오후 인터넷과 트위터를 달궜던 ‘종북좌파’ 플래카드 소동을 돌이켜 본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내가 일으킨 반응은 ‘민주당 내 꼴통들’에 대한 혀를 차는 것이었다. 어쨌든 단일후보를 뽑겠다고 경선을 치르는 상대방을 두고 ‘종북좌파’로 몰아붙이는 것은 스스로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어디 보수색 짙은 지방의 지역구도 아니고 명색 서울의 지역구에서, 수구세력에게는 종북좌파의 수령 격으로 매도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든다 할 민주당 후보가 ‘종북좌파에게 관악을 맡길 수’ 있니 없니 하는 건 몰상식의 극치였고, ‘임산부 배를 발로 차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일이었다. 이 어이없는 행동에 대한 분노는 역시 또 하나의 쓰나미가 되어 해당 지역구의 민주당 김희철 후보 사무실을 덮쳤다. 자업자득이라 생각했다. ‘후보와 관계없는 직원의 실수’ 정도의 변명과 더불어 ‘이는 후보와 무관하며 후보 또한 햇볕정책의 충실한 지지자임’을 밝히는 소회 정도가 덧붙여지는 것으로 해프닝이 마무리되리라 여겼다.


그런데 김희철 후보측은 강력하게 부인한다. 자신들이 붙인 플래카드가 아니라는 것이다. 플래카드를 보긴 봤지만 ‘너무 높은 곳에 걸려 있어서’ 떼지 못했고, 자신들을 욕하는 내용도 아니어서 그냥 놔 뒀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변명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명색 제1 야당 사무실에 밟고 올라갈 의자 하나 없다는 말인가. 솔직히 입밖에 낼 수는 없을망정 속내는 다르지 않았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누구를 죽일 놈이라고 여기고 누가 죽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것과 실제로 칼을 드는 것과의 차이가 천양지차인 것처럼.



 라운드는 본격적으로 바뀐다. 그럼 그 플래카드는 누가 붙인 것인가. 진지하게 상황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우선 플래카드가 붙은 위치가 너무 황망했다. 모름지기 플래카드란 자신의 뜻과 존재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서, 또는 내부 구성원들의 단결과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붙인다. 김희철 후보 측이 이정희 후보의 ‘종북좌파적’ 행동을 부각시켜 색깔론을 제기하고자 했다면 신림사거리 한복판 또는 사무실 건물 외벽에 붙이는 것이 맞고, 내부적으로 읏쌰읏쌰를 하려고 했다면 사무실 안에 붙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플래카드는 ‘사무실 아래층 복도’에 붙어 있었다. 근처에 있다는 노래방 손님들을 겨냥한 플래카드였을까? ‘한 번 반응을 보려고’ 조심스레 사무실 복도에 붙인 것일까?


 더 재미있는 것은 플래카드의 로고다. 민주통합당 로고아래 글씨의 색깔은 원래 녹색이다. 그런데 플래카드상에 있는 글씨는 검은색으로 보인다. 이쪽에는 말짱 문외한인 처지라 뭐라 할 말은 없는데 페친들의 말로는 보통 당 로고같은 것은 그림 파일이기 때문에 글씨 색깔만 검은색으로 바꿀 수는 없다고 한다. 글씨 색깔만 검은색으로 바꾸자면 그것도 하나의 일이라는 것이다. 즉 김희철 후보측은 로고 파일까지 새롭게 만들어 야심차게 제작한 플래카드를 사무실 아래층 복도에 붙여 놓았다는 말이 된다. 그래도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받은 사람과 경험 많은 지역구 선거참모들의 지능지수가 이번에 제주 앞바다에 방사된다는 돌고래보다 못하다는 결론인 것이다.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팩트를 확인하려면 일단 합리적 의심이 필요하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려면 회의해 보아야 안다. 김희철 후보가 이정희 후보와 통진당을 ‘종북좌파’라고 몰아부쳐서 얻을 이익이 무엇이며, 이 일이 불거졌을 때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며, 두 후보가 이렇게 네가 했네 안했네 드잡이질을 할 때 또 누가 웃고 있을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고 가늠을 잡은 후에 분노의 호스를 열어도 결코 늦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폭은 최대한도로 넓어야 한다.



정말로 김희철 후보와 그 참모들이 돌고래들일 수도 있다. 일단 물증(?)이 그 사무실 근처에서 나왔으니 용의 선상에서 어찌 배제하랴. 또 일찍이 수십년 골수 김대중과 민주당 지지자라도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의 눈에 이정희 대표 등등이 종북좌파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제딴엔 의기에 넘쳐서 그런 플래카드를 제작해서 붙이는 돌발행위를 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이 소동의 액면상의 피해자이면서 가장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이정희 후보 측이다. 개인적으로 이정희 후보의 인품은 믿지만, 그녀를 둘러싼 구 민주노동당 내 ‘경기 동부연합’이 ‘씨근거리는 백마’ (연전에 당내 정보를 북한에 전달했던 최기영 등이 당내 인사를 두고 묘사한 표현이다.)처럼 치고 달리며 저지른 행동들을 기억해 볼 때, 그 가운데에서도 빼어난 맹동분자들을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이런 플래카드를 내붙임으로써 쌍방의 갈등을 조장하여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제 3의 범인이 어둠 속에서 미소 짓고 있을 수도 있다. 1공화국 시절 부통령 장면을 쏜 범인은 조병옥 만세를 불렀었고, 80년대 통일민주당을 공격했던 용팔이류는 ‘신민당 사수’를 부르짖지 않았던가.



분노도 진인사 대천명 이다. 천인공노할 일이 터진다 하더라도 먼저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과연 이 분노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 근거는 정확한가를 따진 연후에야 하늘의 분노를 청할 수 있을 것이다. 눈 앞에 벌어진 현상에만 천착한 즉자적인 분노가 부른 참화는 역사서 비로 쓸어낼 듯이 많았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댓가는 분노를 토한 사람들에게로 되돌아왔었다. 분노할 때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며 의롭고 마땅한 일이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며 불의하고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분노 이전에 합리적 의심과 냉철한 판단을 곁들이지 않는다면 그 분노는 결국 엉뚱한 과녁을 향하는 불화살이 될 수도 있을을 기억할 필요는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식당의 예에서, CCTV와 경찰 수사로 진상이 밝혀지기 이전, 임산부 배를 발로 찼다고 규정된 식당 종업원은 그 며칠간 모르긴 해도 지옥을 보았을 것이다. 시비가 붙은 손님을 뒤에서 밀어 넘어뜨린 허물은 분명히 있으나 그 외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을 고용한 사장까지 쪽박을 차게 생겼고 천하없는 악녀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았지 않았는가.



이 중대한 사안, 그리고 본인이 피해를 본 사안에 있어서 김희철 후보가 경찰에 수사 의뢰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점에서 지금의 내 의심의 나침반은 김희철 후보 진영으로 좀 더 기울어 있다. 김희철 후보가 정말로 결백하다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더라도 이 사건의 내막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종북좌파’라는 표현은 ‘숭미사대주의정당’ 처럼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즉 그 말을 썼다고 뭐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본인은 통합진보당과의 야당 연대를 선언한 민주당 후보로서의 자격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하고, 무엇보다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약에 범인이 다르다면? 그것은 아마도 더 큰 일이 될 것이다.



아직 진실은 분명하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지 불분명한 진실을 불쏘시개로 한 분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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