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역
1957년 3월 6일 "당신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헌병 사령관이야."
대한민국은 자칭 법치국가다. 비록 그 말이 진담보다는 농담처럼 들린 세월이 길지만 그 시절에도 힘 쥔 자는 법을 통해, 법의 이름으로 철권을 휘두르고 목을 조르고 즈려밟았다. 그러니 법정이란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고 자신이 관련된 재판인 경우 판사가 하느님처럼 높아 보이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1957년 ...3월 6일 이 판사를 앞에 두고 재판 똑똑히 하라고, 당신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왕년의 사령관이었노라고 판사를 윽박지르는 대장부(?)가 있었다. 그 이름이 김종원이다.
당시 그의 직함은 치안국장이었다. 즉 요즘으로 하면 경찰청장보다 더 높은 급의 고위 관리였다. 그런데 그는 부통령 장면 저격 사건과 관련하여 법정에 나와 있었다.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이 어찌될지 모르는 판에 권력 승계 1순위였던 민주당 출신의 장면이 이기붕 이하 자유당 인사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민주당 계파 싸움의 소산으로 둘러댔으나 곧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후의 인물들이 끌려나왔다. 김종원도 그 의심을 받은 인물 중의 하나였다.
"재판 공정히 하시오! 나를 근거도 없이 배후로 몰고 있어! 법정도 못믿겠어! 맘대로 해! 당신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헌병사령관이었어. " 판사가 법정모욕임을 상기시키며 퇴정을 명령했지만 그마저 무시한채 김종원은 재판정을 도때기 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법치국가 재판정의 위신을 이토록 말씀 아니게 만든 김종원은 누구일까.
그는 일본군 하사관 출신이었다. 일본군 태평양 전선 가운데 최전방 뉴기니 전선에서 호주군과 싸웠던 그는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참담한 전황 속에서도 용케 살아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국방경비대 장교로 변신했다. 신분은 바뀌었으되 그는 흡사 얼치기 사극에 등장하는 못되고 사악한 일본군 오장의 전형이었다. 부하들을 야차처럼 괴롭혀서 해임과 복직을 반복했던 그는 여순 사건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박격포를 쏘아 대는 바람에 아군에게까지 피해를 입혀 미군 군사고문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갓댐! 저거 뭐하는 자식이야.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본격적인 진압과정에서 그는 뉴기니에서부터 가져왔다는 일본도를 휘두르며 '빨갱이'들의 목을 쳐 나갔다. 남경대학살 때 중국인들을 상대로 또는 연합군 포로들을 상대로 목 베기 시합을 했던 일본군의 정기는 왕년의 식민지 출신 전직 하사관에게 유감없이 전승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일본군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일본군 장교들은 졸병들에게 잔혹하고 민간인들에게 악마같이 굴었지만 그들과 맞닥뜨린 적군에게도 역시 불가사의하고 무모할 정도의 용감성을 보였는데 김종원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전쟁 당시 3사단 23연대장을 맡고 있었는데, 23연대를 맡은 미 군사고문들은 가끔 귀신처럼 현장에서 사라지는 연대장을 찾아 헤메거나, 무턱대고 후퇴하려는 김종원을 제지하느라 죽을동 살동 발버둥쳐야 했다고 한다. 미군 장교들은 이 무능한 장교가 부하들을 닦달하고 심지어 서슴없이 죽여 버리는 데에도 경악했다. 또 한 번 미군이 김종원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23연대 미군 군사 고문 푸트만 대위가 얼굴이 새파래져서 “한국군이 부산 교도소에 수감된 좌익수 3천 5백명을 몽땅 학살하려 한다.”는 보고를 올렸을 때였다. 수일 내에 인민군이 부산에 이를 것이고 그전에 빨갱이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 군사고문단은 김종원과 ‘협상’을 벌였고 인민군이 부산에 이르면 기관총을 사용해도 좋다는 승인을 해 주고서야 김종원을 제지할 수 있었다. (그 뒤 미군의 기록은 없지만 학살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김종원은 경상도 경산 출신으로 백두산 근처에도 안가 본 주제에 ‘백두산 호랑이’라는 근사한 별명을 지녔고 미군들에게도 ‘타이거 킴’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호랑이는 적에게는 고양이고 부하들이나 민간인들에게는 식인호랑이였다.
거창 학살 사건 때 국회의원 진상 조사단에게 공비를 위장하여 총질을 했던 그는 이 사건으로 군을 떠난 뒤로는 경찰로 변신했고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경남경찰국장 시절 참모회의 중에 인플레가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대뜸 “어이 수사과장 당장 인플레란 놈을 잡아와!”라고 일갈했던 이 무식한 인간은 결국 치안국장, 요즘의 경찰청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직을 차지하게 된다. 경찰 정복에 말 타고 도심을 누비기를 즐겼던 이 희한한 고양이과 짐승은 경찰서장을 공개리에 두들겨패는 등 망나니 짓을 계속한다.
그의 출세 비결은 ‘무조건 충성’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공비로 가장해 국회의원들에게 총질한 것을 필두로, 이승만이 미국 대사와 말다툼을 벌이자 누가 우리 대통령 각하에게 대드냐면서 권총을 들고 뛰어들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할 것이 없다. 친구를 알면 그 사람을 안다고 이런 인간이 충신이라고 애지중지했던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참 알만한 양반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장면 부통령이 총에 맞을 당시에도 김종원은 치안국장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몰매를 맞은 범인을 데리고 경찰병원으로 데리고 간 다음 경찰간부에게 범인이 배후 관계에 대해 할 얘기를 연습시킨 다음 천연덕스럽게 민주당 계파 싸움이 원인인 것 같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것도 김종원이었다. 그리고 1957년 3월 6일 “판사! 당신 재판 똑바로 하란 말이야.”를 부르짖는 초유의 법정모욕을 벌인 것도 백두산 식인 호랑이 김종원이었다. 4.19 이후에야 그는 장면 암살 기도 사건의 배후로 기소되지만 병보석으로 나와 편안하게 세상을 뜬다.
무모한 돌격 명령을 내린 후 재고를 요청하는 부하를 쏘아 죽이고, 인민군과 맞서 싸울 생각 이전에 죄수들 먼저 죽일 생각에 여념이 없던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은 군대에서는 물론 경찰에서도 최고위직에 올랐고, 오늘도 경찰청장 방에 걸려 있는 역대 경찰의 왕별들의 초상화의 한 임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느 일본군 하사관의 인생 역정 참으로 화려하고도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앞뒤 안가리는 무모함, 외부의 적 앞에서는 고양이, 제가 지켜야 할 국민 앞에서는 식인호랑이가 되는 유연함, 밥 주는 주인에게 물불을 안가리는 충성심,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무식함과 촌스러움 등등 김종원이 지녔던 품성은 마치 유전처럼 대한민국 군과 경찰을 가로지르고 있다면 과장이 될까.
tag : 산하의오역
1957년 3월 6일 "당신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헌병 사령관이야."
대한민국은 자칭 법치국가다. 비록 그 말이 진담보다는 농담처럼 들린 세월이 길지만 그 시절에도 힘 쥔 자는 법을 통해, 법의 이름으로 철권을 휘두르고 목을 조르고 즈려밟았다. 그러니 법정이란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고 자신이 관련된 재판인 경우 판사가 하느님처럼 높아 보이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1957년 ...3월 6일 이 판사를 앞에 두고 재판 똑똑히 하라고, 당신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왕년의 사령관이었노라고 판사를 윽박지르는 대장부(?)가 있었다. 그 이름이 김종원이다.
당시 그의 직함은 치안국장이었다. 즉 요즘으로 하면 경찰청장보다 더 높은 급의 고위 관리였다. 그런데 그는 부통령 장면 저격 사건과 관련하여 법정에 나와 있었다. 고령의 이승만 대통령이 어찌될지 모르는 판에 권력 승계 1순위였던 민주당 출신의 장면이 이기붕 이하 자유당 인사들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민주당 계파 싸움의 소산으로 둘러댔으나 곧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후의 인물들이 끌려나왔다. 김종원도 그 의심을 받은 인물 중의 하나였다.
"재판 공정히 하시오! 나를 근거도 없이 배후로 몰고 있어! 법정도 못믿겠어! 맘대로 해! 당신은 일개 판사지만 나는 헌병사령관이었어. " 판사가 법정모욕임을 상기시키며 퇴정을 명령했지만 그마저 무시한채 김종원은 재판정을 도때기 시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법치국가 재판정의 위신을 이토록 말씀 아니게 만든 김종원은 누구일까.
그는 일본군 하사관 출신이었다. 일본군 태평양 전선 가운데 최전방 뉴기니 전선에서 호주군과 싸웠던 그는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참담한 전황 속에서도 용케 살아서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국방경비대 장교로 변신했다. 신분은 바뀌었으되 그는 흡사 얼치기 사극에 등장하는 못되고 사악한 일본군 오장의 전형이었다. 부하들을 야차처럼 괴롭혀서 해임과 복직을 반복했던 그는 여순 사건 당시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을 때 앞뒤 가리지 않고 박격포를 쏘아 대는 바람에 아군에게까지 피해를 입혀 미군 군사고문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갓댐! 저거 뭐하는 자식이야.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본격적인 진압과정에서 그는 뉴기니에서부터 가져왔다는 일본도를 휘두르며 '빨갱이'들의 목을 쳐 나갔다. 남경대학살 때 중국인들을 상대로 또는 연합군 포로들을 상대로 목 베기 시합을 했던 일본군의 정기는 왕년의 식민지 출신 전직 하사관에게 유감없이 전승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일본군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일본군 장교들은 졸병들에게 잔혹하고 민간인들에게 악마같이 굴었지만 그들과 맞닥뜨린 적군에게도 역시 불가사의하고 무모할 정도의 용감성을 보였는데 김종원은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전쟁 당시 3사단 23연대장을 맡고 있었는데, 23연대를 맡은 미 군사고문들은 가끔 귀신처럼 현장에서 사라지는 연대장을 찾아 헤메거나, 무턱대고 후퇴하려는 김종원을 제지하느라 죽을동 살동 발버둥쳐야 했다고 한다. 미군 장교들은 이 무능한 장교가 부하들을 닦달하고 심지어 서슴없이 죽여 버리는 데에도 경악했다. 또 한 번 미군이 김종원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것은 23연대 미군 군사 고문 푸트만 대위가 얼굴이 새파래져서 “한국군이 부산 교도소에 수감된 좌익수 3천 5백명을 몽땅 학살하려 한다.”는 보고를 올렸을 때였다. 수일 내에 인민군이 부산에 이를 것이고 그전에 빨갱이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 군사고문단은 김종원과 ‘협상’을 벌였고 인민군이 부산에 이르면 기관총을 사용해도 좋다는 승인을 해 주고서야 김종원을 제지할 수 있었다. (그 뒤 미군의 기록은 없지만 학살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김종원은 경상도 경산 출신으로 백두산 근처에도 안가 본 주제에 ‘백두산 호랑이’라는 근사한 별명을 지녔고 미군들에게도 ‘타이거 킴’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호랑이는 적에게는 고양이고 부하들이나 민간인들에게는 식인호랑이였다.
거창 학살 사건 때 국회의원 진상 조사단에게 공비를 위장하여 총질을 했던 그는 이 사건으로 군을 떠난 뒤로는 경찰로 변신했고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경남경찰국장 시절 참모회의 중에 인플레가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대뜸 “어이 수사과장 당장 인플레란 놈을 잡아와!”라고 일갈했던 이 무식한 인간은 결국 치안국장, 요즘의 경찰청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직을 차지하게 된다. 경찰 정복에 말 타고 도심을 누비기를 즐겼던 이 희한한 고양이과 짐승은 경찰서장을 공개리에 두들겨패는 등 망나니 짓을 계속한다.
그의 출세 비결은 ‘무조건 충성’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공비로 가장해 국회의원들에게 총질한 것을 필두로, 이승만이 미국 대사와 말다툼을 벌이자 누가 우리 대통령 각하에게 대드냐면서 권총을 들고 뛰어들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니 더 말할 것이 없다. 친구를 알면 그 사람을 안다고 이런 인간이 충신이라고 애지중지했던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사람도 참 알만한 양반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장면 부통령이 총에 맞을 당시에도 김종원은 치안국장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몰매를 맞은 범인을 데리고 경찰병원으로 데리고 간 다음 경찰간부에게 범인이 배후 관계에 대해 할 얘기를 연습시킨 다음 천연덕스럽게 민주당 계파 싸움이 원인인 것 같다고 기자들에게 말한 것도 김종원이었다. 그리고 1957년 3월 6일 “판사! 당신 재판 똑바로 하란 말이야.”를 부르짖는 초유의 법정모욕을 벌인 것도 백두산 식인 호랑이 김종원이었다. 4.19 이후에야 그는 장면 암살 기도 사건의 배후로 기소되지만 병보석으로 나와 편안하게 세상을 뜬다.
무모한 돌격 명령을 내린 후 재고를 요청하는 부하를 쏘아 죽이고, 인민군과 맞서 싸울 생각 이전에 죄수들 먼저 죽일 생각에 여념이 없던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은 군대에서는 물론 경찰에서도 최고위직에 올랐고, 오늘도 경찰청장 방에 걸려 있는 역대 경찰의 왕별들의 초상화의 한 임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어느 일본군 하사관의 인생 역정 참으로 화려하고도 드라마틱하지 않은가. 앞뒤 안가리는 무모함, 외부의 적 앞에서는 고양이, 제가 지켜야 할 국민 앞에서는 식인호랑이가 되는 유연함, 밥 주는 주인에게 물불을 안가리는 충성심,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무식함과 촌스러움 등등 김종원이 지녔던 품성은 마치 유전처럼 대한민국 군과 경찰을 가로지르고 있다면 과장이 될까.
tag : 산하의오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