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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11.19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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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 오역

1863년 11월 19일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

1863년 5월 1일부터 사흘간 무려 17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전선을 달리하고 맞섰다. 회색 군복의 남군과 푸른 군복의 북군은 격렬하게 충돌하여 게티스버그 벌판을 시신의 산과 피의 바다로 바꾸어 놓았다. 양쪽의 사상자는 5만, 전사자는 1만을 헤아리는 격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남군은 패배했고 남군 사령관 리는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워싱턴 공략 작전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워싱턴을 점령하거나 압박함으로써 남부의 독립을 인정받으려던 전략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남북전쟁의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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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천 명 남짓이던 게티스버그 주민들에게도 이 전투는 엄청난 골칫거리를 가져왔다. 그것은 들판에 나동그라져있던 수만 구의 사람과 말의 시체였다. 모아 놓고 불을 지르려 해도 너무 많았고 파묻기에는 삽과 손이 동시에 모자랐다. 처음에는 사망자 가족에게 돈을 받고 매장해 주자는 주장이 있었는데 일부가 이에 반대하여 '국립묘지'를 만들어 줄 것을 청원했고 이것이 수용되어 게티스버그에는 국립묘지가 조성되게 됐다.


그 묘지 헌정식이 1863년 11월 19일 오늘이었다. 원래는 10월 말이었는데 당시 유명한 연설가로서 이 헌정식을 빛낼 연사로 섭외된 에드워드 에버렛이 "연설문을 준비하기엔 너무 짧다."고 하여 11월 19일로 연기된 것이었는데 장례 준비 위원회는 이 일정이 확정된 후에야 백악관의 주인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 "국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사의 의의를 명확히 할 몇 마디 헌정사를 짤막하게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즉 ‘참석’을 전제로 하고 몇 마디 덕담 정도면 감사하다는 뜻이었다.


당일 에버렛은 두 시간 동안이나 열변을 토하면서 사람들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역시 웅변가다웠다. 그 뒤를 이어 링컨이 단상에 올랐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껑충한 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지만 연설은 주최측의 부탁대로 짧았고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려는 즈음 끝이 나 버렸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칠 경황도 없었고 그 내용에 감동할 여유도 부족한 연설이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그 연설의 의미를 알아보았다. 그 가운데에는 웅변가 에버렛도 있었다. “나의 두 시간이 당신의 2분만큼 핵심에 접근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링컨은 어린이들이 익히 외우는 것처럼 ‘정직한 에이브’만은 아니었고, “어떻게 흑인과 백인이 섞여 살겠는가? 아프리카로 가는 게 어떤가?”하고 흑인들에게 권유하고 “노예제도를 고수해서 연방이 유지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공언한만큼 ‘신실한 노예들의 해방자’도 아니었으며, 남북전쟁의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자 서부로 병력을 돌려 인디언들을 내몰았던 차가운 정치인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링컨의 이 연설은 두고두고 곱씹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링컨 개인의 사고를 넘어서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선포한 연설이기 때문이다.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중략)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그리고 인민들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연설문을 옮기면서 잠깐 고민을 했다. ‘인민’이라는 단어가 쓸데없는 시빗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었던 유진오는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 ‘인민’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빼앗겼다고 탄식했다. 링컨이 표현한 'people'에 가장 어감아 들어맞고 뜻도 의젓한 단어 ‘인민’은 ‘국민’이라는 일제 냄새 풀풀 풍기는 단어로 대체당해야 했다. 함부로 그 말을 쓰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세월이 우리 위로 수십 년이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지만 존엄한 우리 ‘인민’은 일상적으로 쓰던 말조차 압수당하고 잃어버려야 했다.


그 뿐이 아닐 것이다. 66년 전 “자유 속에 잉태된” 해방된 새 나라를 꿈꿨던 이래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세력과 그에 대항한 이들의 게티스버그는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에 허다하게 등장했고 많은 이들이 그 폭정과 저항의 와중에서 죽어갔다. 거기엔 남과 북이 따로 없다. 제 나라 정부의 총칼에 죽어간 인민들이나 제 나라 정부의 미욱함 속에 굶어 죽어간 인민들이나 모두 인간에 대한 억압과 인간에 대한 존엄함이 겨루는 ‘우리들의 게티스버그’의 희생자들이 아니었을까.

“그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신의 가호 아래,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죽지 않도록 하는 것.” 링컨이 무슨 생각을 했든 이 명제는 언제 어디서 듣든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한다.


인민이란 존엄한 인간의 합일 것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 개개인의 집단이며, 그에 반하는 모든 형태의 억압들, 즉 이익이나 이념이나 목표를 위해 인간의 존엄을 폐기하려는 모든 움직임들에 대하여 저항하는 사람들의 연합일 테니까. 그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뜻에 맞게 ‘새로운 자유’를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일 테니까. 그렇게 될 때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는 걸음마를 시작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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